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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로마제국의 전성기를 이룩한
유스티니아누스1세, 즉 유스티니아누스 대제에 대해 알아보도록하자!
유스티니아누스는 외숙부였던 유스티누스1세의
행정을 돕다가 마침내 527년 외숙부의 사후 단독황제로 재위하게 되.

유스타니우스 모자이크화.jpg

중앙의 유스티니아누스 대제, 그리고 좌측의 명장 벨리사리우스.jpg
대제의 이야기에 테오도르 황후를 빼놓을수 없어.
테오도르와는 황제가 되기 전에 결혼을 하는데, 황후의 아버지는 수도에서 마차 경주장에서
망을 돌보는 천한 직업에 종사했고, 테오도르 역시 일설에는 무희 또는 창x 였다고 하며,
음탕한 여자있다고해.
당시 제국법에서는 귀족과 평민신분의 혼인을 금하고있었기에,
원로원 신분인 대제는 황제였던 외숙부를 사주하여 하급계층과의 혼인을 할 수있게 법을 고치고
결혼할수 있게 되었어.
위와 같은 결혼스캔들에도 테오도르는 황제에 대한 내조를 철저히하고 아주 현명한 식견으로
편견을 가지고있던 귀족들마저 감응시켜버려.

남아있는 테오도르 모자이크화.jpg
그리고 이 황후가 결정적인 여걸본능을 뽐낸사건이 있었어.
재위 5년 째이던 532년, 인기있던 전차 경주의 두 팀을 응원하던
청색당, 녹색당이 폭동을 일으키고 이게 반란으로 확산되어
수많은 군중이 황궁에 까지 몰아닥쳐.(니카의반란)

로마의전차경기.jpg

영화 벤허속 전차경기장.jpg
이에 대제는 수도를 버리고 달아나려 했엇는데,
황후가 앞을 막고 "황제는 황제답게 떳떳하게 죽어야 합니다"라고
격려(?)아닌 격려를 하였어.
황제는 싸이가 아내의말을 듣고 정신차리고 군입대 한것처럼,
마음을 다잡고, 황후는 벨라시우스 등의 장군들을 불러 반란을 진압하게 했어.
세줄요약
1.테오도라는 음탕했다고 여겨졌으나
2.이와 결혼하기위해 법까지 바꾼 대제의 판단은
3.정확했다.
집권 초 대제의 통치에 대해 알아보도록하자
능력주의 행정
황제가 된 후에 대제는 신분이 아닌 능력으로 인재를 선발하여서
오랜 귀족과 황실의 부정부패, 그리고 귀족계급을 견제하게 해.
무엇보다 벨리사리우스, 나르세스 등의 우수한 장군을 등용하여서
당시 불안정했던 제국의 변방을 안정시키려고 노력해.
그리고 중요한 법전!
이 전글에 테오도시우스 법전에 대해 소개했을거야.
대제는 나아가 집대성과 체계화를 위해 노력했어.
529년 트리보니아누스를 법무관으로 임명하여 특별위를 만들고
'유스티니아누스 법전'을 편찬했는데
바다와 바닷가에 공적소유를 도입하였고
노예에 대해서는 부려도되나, 주인의 이유없는 학대를 금기시켜.
그리고 이상의 칙법을 통합한 신칙법을 가한 것을
하나로 엮어 로마법대전을 편찬해.

로마법 대전중 학설휘찬의 16세기판.jpg
그리고 제국 부흥의 꿈을 이루기 위해 군사행동에 들어가.
하지만 고토회복으로 돌아가기 전에 대제에게는
후방의 페르시아라는 적을 확실히 평정해야할 의무가 있었어.
530년의 다라전쟁으로 촉발된다지만 사실
524년도 부터 양국간의 전쟁이 시작되
먼저 당시 구아람 1세 다스리던 페르시아의 속국 캅카스 이베리아가
반란을 일으키고 로마의 편으로 돌아서

오늘날의 조지아 근방.jpg
526년, 양 국은 남캅카스와 메소포타미아 북부지역에서 충돌하게 되고,
전쟁은 페르시아에게 유리하게 전개되.
1년만에 이베리아의 반란은 진압되고, 로마의 니시비스, 테베타의 공격은 실패한 반면,
페르시아의 로마 공격은 성공적이여서 방어력 보강을 방해하였어.
이 때의 공격에 로마군의 약점을 알게된 대제는 대대적인 재조직에 들어가.
그리고, 530년 분쟁의 씨앗이 되었던 다라요새에서
둘은 대규모 회전, 영혼맞다이를 하게되
세줄요약
1.대제는 능력위주인재도뽑고 법전도 만들고 못하는게 없는데
2.페르시아만 만나면 팍떨어졋다 팍올라갓다마 정신을 고마..
3.그리고 이어진 530년 다라요새전투
527년, 27세 약관의 나이에 총사령관이 된 벨리사리우스에게
이 전쟁은 그동안에 쌓은 명성과 내공을 시험해 볼 수있는 장이였어.
약 4만명의 페르시아 군이 요새를 감싸고 공격할 태세를 갖춰.

페르시아 중기병.jpg

동방왕조군대.jpg
당시 이에 맞서던 벨리사리우스는
25000명을 거느리고 요새방어보다는
나가서싸우는 회전을 결심해.
미리 선정한 전장으로 적을 유린한다음, 적시에 몰아칠 계획이엿지.
로마군은 기병과 보병, 기병은 중기병이였어.
중앙에 보병, 양익에 기병을 배치하고 기병을 상당히 앞에 위치시킨후
각 부대는 참호를 파라 명해.

로마의 자랑이던 카락프락토이.jpg

동로마의 보병대.jpg

다리전투 배치도.jpg
병력이 우세했던 페르시아는 로마의 방어적인 태도를 전투를 두려워한다는 신호로 받아들이고,
벨리사리우스가 상호협상을 제시했던 터라 득의양양한 기세로 공격을 개시해.
하지만 그들은 이것이 벨리사리우스의 전법인 줄을 몰랐어.
카락프락토이는 후퇴하는 척하며 역시나 강력했던 페르시안기병을 분리될 때 까지 유인한뒤,
보병들이 뒤따라오자 창끝을 돌려 일제히 반격을 개시하여 크게 승리하게 되.

이 때 로마군의 화살은 위의 무장이 좋지않던
페르시아군에게 치명적인 무기가 되버려.
이에 벨리사리우스는 국내외에 큰 명성을 떨치게 되.
헌데 페르시아는 임모탈의 후손이여서 그랬을까?
만족하지 않고 동로마를 향한 침공을 계속해나가
캅카사에 다시금 침공을 감행하나, 이 역시 사탈라지방에서
시타스에게 패퇴하게되.
또 침공을 시작한 사산왕조는 531년 칼리니쿰 전투에서
기어코 벨리사리우스를 무너트려.
일전일퇴의 공방전 끝에 양국은 532년 9월에
영구평화조약을 체결하게 되.
합의한 사항은 양국은 모든영토를 반환하고, 로마가 배상금 110 센테리아나(금5톤)을
지불하는 것으로 합의하고, 이베리아에서는 페르시아의영향권아래
거주민들이 계속 여기서살지, 동로마로 이주할지 선택권을 줘.
세줄요약.
1.벨리사리우스는 다리에서 대승을 거두나
2.사산왕조의 계속된 침공에 일전일퇴의 공방전 중
3. 양국은 다시 영구평화조약을 체결한다.
이제 나름 제국의 동방전선을 안정화 시킨 대제는
고토로 눈을 돌려서 533년 북아프리카로 원정을 떠나.
먼저 당시 반달족이 북아프리카를 지배하고있었는데,
왕 힐데리크는 친로마 정책을 펼치던 중,
530년 사촌 겔리메르에게 왕위를 뺏기게 되.
이에 분노한(이라 쓰고 웃는다고 이해한다) 대제는
전쟁선포와 함께 벨리사리우스 에게 군사를 주어
아프리카를 침략하게해.

당시 반달왕국의 강역.jpg
533년 약 15000명의 병력과 상륙한 벨리사리우스는
당시 카르타고와 10마일 정도 떨어진 아드 데키미움이라는 협로에서
마중나온 겔리메르의 반달 군을 만나게 되.
이 반달왕국과 동로마제국의 전쟁을
단 15000명으로 십수만의 반달군인을
패퇴시켰다고나오는 기록들이 많은데
사실 반달 이주민 전체의 숫자가 약 15만정도로 추정되어져.

게임 속 반달전사의 모습.jpg
여기서 반달왕 겔리메르는 나름의 방책으로 병력을 3개로 쪼개에
순차적인 협공을 하기로 하였으나
동생이 이끌던 선봉이 동로마정예부대에의해
완전히 격파당하자 멘붕을 일으켜.
남은 병력으로 전투를 벌이나
승리는 동로마제국에게 돌아가.
사실 승기를 잡을 수 있는 결정적인 순간에 반달왕이 동생의 시신을 찾느라
전투를 중단한게 컸다고 기록되어있어.
문명화된 야만인의 약점이 드러나. ㅠㅠ
이후 카르타고의 수비에 치중하던 중 반달왕국과의 마지막 전투인
티카메론전투에서 벨리사리우스가 마지막 칼을 꽂으면서 북아프리카 영토 회복이 이루어져.
그리고 이어서 시칠리아와 사르데나 코르시카등 지중해의 여러섬들의 지배권을 회복해.
세줄요약
1.북아프리카원정에서
2.벨리사리우스가
3.반달왕국을 정복한다.
그리고 이어진 이탈리아 원정
당시 북아프리카를 수복하고 지중해 섬을 정복하고 지내던 벨리사리우스 원정대에게
이탈리아를 점령하고 있던 동고트왕국에서 내전이 일어났으니
수복의 기회로 삼고,
당시 이탈리아 동쪽전선에서 활약중이던 나르세스(이 사람도 희대의 명장이다)를
대신해 벨리사리우스를 투입해.

동고트의 강역.jpg
535년 출발한 벨리사리우스는 시칠리아를 점령하고
이탈리아 본토로 진격하여서 536년 나폴리를 회복해.
그리고 같은해 12월 9일 드디어 로마제국의 영고지 로마를 수복해버려.
이에 동고트족은 비티게스를 왕으로 추대하고
대군을 모아서 537년부터 538년까지 로마를 포위공격했으나,
명장은 쉽게 막아버려.
한편, 유스티아누스는 물러났던 나르세스를 다시 이탈리아로 보내버리는데,
사실상 벨리사리우스에 대한 감시를 위해 보낸거였어.
정말 대단한 건 대제의 지독한 의심가 짜디짠 원정대 보급과 충원에도
불구하고 고토수복을 성공시킨 명장두명의 멘탈이야.
레오1세 원정군의 반의 반도 안되는 군세로 이 정도로 성공했다는게
정말 대단한거지.
역시 황제의 기대에 부응한 명장 두명 사이에 알력이 생기고
원정에 차질이 생기게 되.
밀라노를 탈환하고 다시 뺏기자 나르세스는 온지 몇 달 안되서 로마로 소환당해버려.
벨리사리우스는 540년 동고트 왕국의 수도 라벤나를 점령해 버리는데,
이에 동고트는 나라가 멸망할 지경이니 명장에게 왕국 절반을 주겟다고 하며
유혹을 시젼하는데,
충성심 드높았던 벨리사리우스는 도시탈환을 위해 받는 척하고 점령해버려.
그런데 이에 의심을 품은 대제는 장군을 소환해버리지...
세줄요약
1.황제는
2.이탈리아 까지 수복한 충성하고있는 명장을
3.믿지못하였다.
그리고 우리의 이모탈 사산조는
이탈리아 문제로 골몰하고있던 대제의 뒤통수를 후려갈겨.

파란색이 대제시절 강역 보라색이 회복한 강역 옆에 노란색과 살구색은 사산조와 그 속국들이야.jpg
수도로 소환당했던 벨리사리우스는 곧바로 이 전장에 투입되.
당시 고토수복을 유심히 지켜보던 사산조의 호스로1세는
동로마의 부흥에 나도한번해보자를 시젼하고
시리아와 메소포타미아등의 도시를 약탈하고,
안티오케이아의 도시거주민을 강제 이주시켜.
명장은 이에 541년 니시브스를 공격하였으나 큰 성과를 거두지못하고
다시 544년까지 일전일퇴의 공방을 벌여.
이 때 로마는 크테시폰에 평화협정을 위환 대사를 파견하고
545년 로마가 돈을 지불하는 조선으로 5년간의 정전협정에 합의해.
그러던 중 548년 에그리시의 국왕 구바세스2세가 페르시아의 가혹한 지배를 벗어나려하자
대제는 기회를 놓치지않고 연합군을 조직해 수차례 페르시아를 상대로 승리해버려.
그러나 다시 페르시아의 장군 미흐르에의 침공으로 에그리시 동부를 잃게되고,
사신파견으로 매년 1톤금화지불조건으로 에그리시를 '제외'한 지역에서의
정전협정을 하게되.
(사실상 로마의 돈으로 사는 평화가 많았다. 하지만 반증으로 사산조차도
동로마의 경제력에 상대가 되지못햇다는 사실이다.)

동로마와 페르시아의 565년당시 경계.
에그리시의 전쟁은 몇년의 공방끝에
똑똑! 찾아온 백훈족의 침공을 막아내느라 바빳던 호스로1세가
557년 에그리시 포함 으로 갱신해.
그리고 더이상 서로 갉아먹는 소모전에 넌더리가 난
대제와 호스로1세는 561년 50년만의 평화협정에 합으해.
이번에도 역시 페르시아가 매년 3만 노미스마의 금화를
받는 조건으로 완전히 에그리시에 손땐다는 조약과,
외교, 교역의 활성화 새로운 요새건축을 금지한다는 조약이 들어가있었어.
세줄요약
1.호스로1세의 확장야욕이
2.다시금 동로마의 동방전선을 달구고
3. 공방전에 진저리난 두황제가 평화협정을 맺는다.
다시 우리는 이탈리아 전선으로 가보자.
벨리사리우스가 동부전선에 가있는 동안, 이탈리아에서 로마군의
입지는 굉장히 불리하게 돌아가고있었어.
대제의 짜디짠 보급이 가혹한 재정공출, 약탈을 불러일으켯고
대중의 지지도 못받고 있었지.
이에 동고트족은 541년 가을에 토틸라를 자신왕으로 선포하고
이 유능한 왕은 542년 남부이탈리에에서 나폴리를 점령하는 등
무서운 속도로 로마군을 밀어내고있었어.
544년, 벨리사리우스는 다시금 이탈리아로 투입해
공세에 들어가나... 황제의 의심병에
548년 나르세스로 교체되어져.
이 다른 명장은 우세원 병력과 지원으로 고트족을 몰아내고
드디어 552년 동고트 왕국 수도라벤나를 탈환하며
이탈리아 내의 모든 동고트세력을 뿌리뽑아.
이로써 고토회복을 위한 대제의 노력이
결실을 맺게되는 순간이 찾아와.

고토회복이후의 판도.jpg 크고아름답다.
그리고 여기서 멈추지 않고
552년 로마는 서코트족의 히스파니아를 침공하여
몇몇 도시를 회복해.
치세에 559년 슬라브족이 수도로 공격해 들어오기도 하나,
명장 벨리사리우스가 투입되어 제국을 구원하고
561년 아바르의 침공도 보상금으로 물러가게 만들어.

슬라브이동경로.jpg

아바르의 강역.jpg
세줄요약
1.이탈리아전선에서 동고트를 무너트리고
2.고토를 회복한후
3.유목민들의 침략도 슬기롭게 막아낸다.
그 결과
대제는 과거 로마제국 영토의 대부분을 수복해.
하지만 그에따른 여파로 이탈리아는 전쟁으로 황폐화가 되고,
대제 사후 3년만에 다시금 롬바르드족의 남하로 뺏겨버려.
또한 페르시아와의 과도한 돈으로 산 평화는 재정을 악화시키고
서부전선에서 오랜시간 전력을 소비한 로마는
새로운 침입자들을 효과적으로 물리치지도, 동화시키도못했어
사후 영토는 무너져갔고,
재임 중의 현명한 장군들에 대한 끝없는 시기는
능력제도의 모순을 낳지.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가속화시킨것은
원조 흑사병의 등장이야.
무리한 증세를 통해 동고트에게 다시금 재건의 기회를 준것,
그리고 점령영토에 대한 지배력을 확고히하는등의 비용이
흑사병으로인해 도시화율이 높았던 동로마 도시들을 짓밟고
황제마저도 사경을 해매는 통에
유지될 수가 없었던 거지.

중세흑사병당시의사모습.jpg

흑사병의 참화를기록한 중세기록화.jpg
한편 다양한 반면의 업적에서 건축, 특히 성소피아 성당 얘기도 안해볼 수 없어.

모스크는 당시에는 없었어 ㅠㅠ

솔로몬이여, 내 그대를 이겼노라!
537년 12월 27일 거행된 헌당식에서 대제가 외친말이라고 해.
역사속에서 원래는 330년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수도를 천도하면서
아들인 2세가 소피아를 건설해.
허나 404년 수도 폭동으로 소실되고 말아

맨 오른쪽이 초기모습. jpg
다시금 415년 재건 이후에도 니카의반란때 잿더미가 되버렷어.
이에 유스티니아누스는 재건을 결심하면서
더 크고 아름답게 만들어달라며
물리학자와 수학자에게 설계를 맡겨
1만명이상의 인력이 동원되어 6년만에
끝낸 공사는 전문적인 건축가가 아닌 두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광대한 규모의 대성당을 완성해.

모스크 건축전의 성소피아성당.jpg
이 처럼 건축부문에도 상당한 업적을 남기게되고
이 성소피아성당은 지금도 동방정교의 심장으로 기어되고있지.
하지만 모스크라니 ㅠㅠ
그리고 또한 종교문제에도 큰 영향을 끼쳐.
484년 부터 시작된 동방과 서방교회의 분열을 종식하는데
힘써서 519년에 교황 호르미스다의 사절이 방문하며
통합을 다시금 이루어내
하지만 다시금 544년 칙령을 통한 칼게돈 공의회의 결의, 단성론자 모두의
지지를 얻고자 했었는데 실패로 끝나게 되고,
교황은 이를 직접적으로 비난하게 되.
세줄요약
1.건축, 종교등
2. 여러문제에 다방으로 업적을 남긴대제
3. 그러나.....흑사병의 등장으로..
하지만 그의 말년은 불행했다고 해.
첫째. 금술좋던 테오도라가 죽은 후 공민왕의 노국공주를 잃은 후와 같이
반쯤 노망이 나버려. 지나치게 종교문제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고
정통파와 단성론 신자 두 파와 화합할려던 노력은 자기주장고집으로 불화를 일으키고,
만년에 이르러서 대제가 거의 반쯤 황천길에 발을 걸터놓자,
그의 후사였던 유스티누스 대신에 벨리사리우스를 옹립하려던 움직임이 있었는데,
갑자기 대제가 회복해버려.
결국 연루된 장군 모두를 처형하고 명장을 한직으로 몰아버려.
그리고 이 시기, 머리좋던 유스티니아누스대제에 의해 돌아가던 국고재정관리는
반폐인 상태의 대제가 감당할 수 없었어.
그리고 565년 대제가 죽자, 수도의 시민들이 무척 환호했다고해.
그리고 더 큰문제인건 그의 후임 황제인 조카 유스티누스 2세는
반 폐인 상태였던 대제가 남겨놓은 변방군대의 엄청난 봉급체불 뿐이 놓여있었고
커다란 부담과 함께
재위를 물려받아.
마지막 세줄요약
1.대제는 유능했고
2.중흥을 이끌었으나
3.흑사병과 종교문제, 그리고 국고탕진으로 나름의 비난도 존재한다.
몇 가지의 단점이 꼽혀지지만
동로마 최고의 전성기를 이끈 왕으로
강역지도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서부와 북부 동부 전선을 모두 유지하면서 공세를 펼쳤던
동로마의 위대함과 대제의 통치력을 알수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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