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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희빈의 생애

glofpd 2015. 12. 18.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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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희빈의 생애 ))

 

희빈 장씨(禧嬪張氏) :  본명은 장옥정(張玉貞)이고,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1659-1701)

 

아버지는 역관(조선 시대에 통역, 번역 같은 업무를 맡던 관리) 장형이었고 어머니는 조사석의 노비였는데,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역관 장현의 종질녀로 어려서 침방나인으로 궁에 들어갔다. (남인쪽 사람인 대왕대비 조씨가 많이 도와주었다.

 

장옥정은 미모가 매우 뛰어났기에 금방 이순(숙종)의 총애를 얻을 수 있었다.

 

(미모가 얼마나 뛰어났냐면, 여인의 외모에 대해서 전혀 언급을 안하는 실록에서 조차도  '나인으로 뽑혀 궁중에 들어왔는데,

 얼굴이 자못 아름다웠다'고 기술되어 있다. 그야말로 경국지색, 어쩌면 조선 최고의 미색이었는 지도 모른다.)

 

그러나 숙종의 모후 김대비(명성왕후. 명성황후랑 다른 인물이다.헷갈리지 않길,)그리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니었다.

 

김대비는 서인 가문 출신이어서 철저하게 서인 편에 섰는데, 남인과 친한 옥정이 좋게 보일 리 없었겠지.

 

옥정을 궁 밖으로 쫒아냈는데, 옥정이 쫒겨나자 마자 인현왕후가 숙종의 계비(첫번째 왕비가 죽고 두번째 왕비를 들임)로 궁에 들어오게 된다.

 

옥정은 궁 밖에서 6년 동안 기다리면서 재입궁을 준비했다. 이순(숙종)이 옥정을 (6년 동안) 계속 그리워했음.

 

어쨌든, 대비 김씨의 3년 상을 치르고 대왕대비 조씨의 부탁에 따라 이순(숙종)은 옥정을 다시 궁으로 불러들인다.

 

이 때는 이순(숙종)의 옥정에 대한 애정이 매우 깊었지만, 빛이 있으면 어둠도 있는 법!

 

후손을 낳지 못해 이순과의 관계가 소원했던 인현왕후의 투기심(질투심)이 극에 달한다. (게다가 옥정을 좋게 볼 리 없는 서인들이 온갖 음모를 꾸민다.)

 

그래서  갖은 명분을 가장한 억지를 써가며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옥정을 기어이 매질까지 한다.(숙종한테 옥정을 자주 모함하기도 하고.)

 

그런데 옥정이 이순의 첫 아들(경종)를 낳고야 말았다. 덕분에 정1품 희빈의 봉작까지 받았음.

 

이를 탐탁지 않게 보던 서인들이 거슬렸는지, 이순(숙종)은 환국을 일으켜 집권 당을 남인으로 바꿈. (왕자의 안위를 위한 처단이었음.)

 

그리고 이어서 인현왕후를 페서인 시켜 쫒아내고, 옥정은 중전 자리에 오르게 된다.

 

여기까지가 옥정의 삶의 절정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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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서인들은 영리했다. 서인 김만중의 '사씨남정기'라던가, 어느 서인 또는 인현왕후의 궁녀가 쓴 '인현왕후전'같은 이야기를 통해

 

대중들의 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해 민심을 얻었다.

설상가상으로,  남인들이 왕권을 수시로 위협하던 탓에 옥정에 대한 이순의 사랑이 거의 식어가고 있을 때였음.

 

여기서 최숙빈(동이)가 등장한다. 인현왕후 쪽 무수리였는데, 남인을 견제하기 딱 좋았으니.

 

게다가 최숙빈이 임신이 굉장이 잘 되는 체질이었는지 얼마 안되서 바로 임신을 해버린다.

 

어쨌든, 숙종은 폐비 민씨를 중전으로 다시 복귀시키고, 옥정을 다시 희빈으로 강등시킴.

 

또 한번의 환국이 일어나 조정의 남인들을 대부분 몰아내고, 서인들을 다시 불러들임.

 

옥정은 이제 팔 다리 잘린 꼴이 되어 버렸는데, 힘들게 낳은 옥정의 둘째 아들까지 10개월 만에 이승을 떠나버린다.

 

세자(경종)가 병에 걸려 취선당(숙종이 옥정을 위해 내린 전각)에 신당을 차려 굿을 했는데,

 

2년 뒤에 인현왕후가 병으로 죽자, 영악한 최숙빈이 옥정이 인현왕후를 저주했던 것이라며 모함한다.

 

어떠한 증거도 없었지만, 궁인들을 가혹하게 고문해서 거짓 자백을 받아냄.

 

이걸로 옥정을 죽일 명분이 생긴 거다.

 

세자가 숙종과 대소 신료들에게 애원했지만, 결국 뜻을 무르지 않았다.

 

숙종은 장옥정에게 자진(스스로 목숨을 끊어라) 라는 명을 내리고, 옥정은 순순히 사약을 마시고 죽게 된다

 

 

 

 

<2. 장희빈에 대한 오해와 진실들>

 

 

1) 장빈이 경종을 고자로 만들었는가? ㅡ> 절대 아니다. 서인들이 장희빈을 폄훼하기 위해 지어낸 이야기다.

 

 

2)장희빈이 인현왕후를 저주했나?  ㅡ> 아니다. 경종이 병에 걸려 굿을 한 것을 가지고 최숙빈이 모함한 것이다

 

3)장희빈은 사약을 받을 때 발버둥치고 난리를 쳤는가? ㅡ> 아니다. 이것 또한 서인들의 모함이다. 실록으로 보아 순순히 받았다.

 

 

 

 

<3. 매체속 장희빈>

 

 

장희빈과 연관된 많은 드라마가 있지만, 대부분은 드라마의 재미를 위해 장희빈을 악녀로 왜곡했다.

 

그리고 어느 샌가 장희빈은 악녀로 우리들의 머리속에 낙인찍혀 버렸다.

 

<4 장희빈에 대한 평가>

 

여태까지는 드라마의 영향으로 우리들 중 대부분을 장희빈을 악녀라고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 전문가들은 장희빈을 동정적으로 (심지어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대표적으로 단국대학교 김인호 교수의 평가가 있다.

 

우리가 500년의 조선 역사 중에서 최고의 어머니와 최고의 여성상을 또 한 사람 꼽는다면 그녀는 바로 장옥정 즉 장희빈이다. 특히 여성의 정치적 사회적 권리가 전혀 보장되지 못하고 정치적 훈련이 전혀 없던 시절 그래도 자식을 왕으로 만들고 정국의 주도권을 장악하여 남성의 국왕 못지 않은 정치적 영향력을 후세에 남긴 장옥정이야말로 오늘날 다시 평가되어야 할 사람이라 보인다. (이하 생략)     이러한 전문가들의 영향으로 최근에는 '붕당싸움의 피해자' 인식이 바뀌는 추세이다.   참으로 다행이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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