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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14세 Louis XIV , 1638.09.05~1715.09.01>

 

 

'짐이 곧 국가다.', '왕권은 신으로부터 비롯된다.' 등등 명언으로도 유명한 태양왕 루이 14세.

이번에는 마치 우리의 원조갓카처럼 넘사벽 포스와 함께 프랑스의 중흥을 이끌었던

프랑스의 위대한 군주 그리고 베르사유 궁전에 대해서 알아볼게!

 

 

루이 14세는 프랑스 부르봉 Bourbons 왕가(1589-1792)의 세번째 왕이야.

루이 14세의 할아버지인 앙리 4세는 신교도의 수장으로,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발로와 Valois 왕가를 대체하였고 그의 아들 루이 13세가 왕위를 계승해.

하지만 루이 13세는 정말 정치에 관심이 없었다고 해. 항상 자신의 어린 아들 루이 14세를 데리고 사냥이나 하며 놀았지. 이 두 부자가 사냥을 떠났다가 그곳에서 잠시 쉬려고 지은 작은 성이 나중에 베르사유 궁전의 모태가 돼!

정치에 관심이 없었던 루이 13세 대신에 리슐리우라는 추기경이 정치적 실권을 행사하게 되는데

 

그는 갑옷을 입은 추기경으로도 유명해. 그는 군복을 입고 있는 추기경, 전쟁을 지휘하는 추기경

그리고 수상의 지휘를 갖고 있었던 막강한 권력자였어.

 

모든 정치를 대신하고 있었던 그는, 당시 프랑스와 가장 강력한 경쟁국가였던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가와 동맹을 하기 위해 루이 13세와 스페인 공주 안오트리쉬(Anne d'Autrche)를 정략결혼시켜.

적국의 공주가 프랑스 왕국에 오게 되자. 그녀는 그곳에서 온갖 따돌림을 당하게 되고

특히 당시 실세였던 추기경이 그녀에게 경계심이 아주 많았는데,

그 두 사람의 갈등을 빚어낸 소설이 바로바로 그 유명한 삼총사다

 

루이 13세는 고자였는지 게이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스페인 공주와 결혼한지

23년이 지나도 아이가 생기지 않았어.

근데 갑자기 1638년에 아들이 하나 태어나! 그 아이가 바로 루이 14세야!

탄생과 함께 많은 출생의 여러가지 설에 휩쓸린 사람이 루이 14세야. (마자렝♥)

귀족들은 저 고자새기(루이 13세) 밑에서 어뜨케 아이가 태어났지??? 이러면서 루이 14세를 의심하게 되지.

 

루이 14세가 만 5세가 되던 해에 아버지가 죽고 그는 왕위를 계승하게 돼.

5살의 꼬꼬마를 대신하여 엄마가 섭정을 하게 되는데, 엄마는 아까도 말했다싶이

프랑스 왕실에서 왕따 당하던 스페인의 공주야.

불어를 할 수 없었던 그녀는 이탈리아 출신의 마자렝 추기경을 새로운 대리인으로 선출하는데

귀족들이 프랑스에서 스페인 공주와 이탈리아 추기경이 설쳐대는 꼴을 절대 용납하지 않았고

파리에서 반란을 일으키는데 그것이 바로 프롱드의 난(La Fronde)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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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롱드의 난은 총 2차례에 걸쳐서 파리에서 발생한 반란인데

한번은 루이 14세가 야반도주를 해서 겨우 목숨을 건졌으나

다른 한번은 인질로 잡혀서 온갖 수모를 겪게 돼.

 

이 과정에서 마자렝은 어린 루이 14세를 철저하게 보호해주고,

귀족들 사이의 권력다툼을 이용하여 그들을 분열시키고,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도움을 받아 루이 14세가 성인이 될 때 까지

그를 안정적으로 서포팅해줘.

프랑스 왕실법에 의하면 어린 왕이 만 14세가 되면 섭정이 공식적으로 폐지 되어야 하나

루이 14세는 마자렝이 죽을 때 까지 섭정체제를 그대로 지켰으며,

마자렝이 행정을 할 때 루이 14세는 절대로 간섭하지 않았다고 해.

1661년 마자렝이 사망하고 나서야 루이 14세는 모든 고위 관료들을 모아놓고

앞으로 프랑스에는 수상이 없다며 왕이 직접 통치를 한다는 선언을 하게 돼,

이로써, 프랑스 역사상 가장 강력한 군주제이자 중앙집권제인 절대왕권제가 수립되게 된당.

 

루이 14세가 내세웠던 정치론은 왕권신수설. 왕의 권한은 신으로부터 오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왕의 권위에 대항 할 수 없다며 절대적인 권력 독점 체제를 수립하고,

본인이 사망하기 전까지 직접통치제도를 유지하면서 스스로를 태양왕이라고 칭하게 돼.

 

이 루이 14세는 자신의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예술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데,

'전쟁과 같은 특수한 상황이 아닐 때 군주의 위엄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은 건축물이다.'

라는 말과 함께 자신의 모든 힘, 권력을 이용하여 자신의 권력을 마음껏 드러내!

때문에 이때 프랑스 곳곳에 새로운 건축물들이 세워지게 되고, 프랑스는 예술적으로 엄청난

발전을 이루게 된당!

 

 

루이 14세의 예술 업적 중 첫번째가 바로  이것이야!

 

 

<베르사유 궁전 Château de Versailles>

루이 14세는 1682년에 프랑스 왕궁을 루브르(파리중심)에서 베르사유(파리외각)로

옮기는 작업을 하게 돼. 루이 14세가 베르사유를 왜 짓게 되었을까?

크게 두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번째는 어린시절 귀족들의 반란인 프롱드의 난을 겪게 되면서 파리에 대한 불신을

갖고 있었고.

두번째는 직접적인 동기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마자렝이 죽고 루이 14세가 본격적으로 권력을 잡던

1661년에 있었던 대형 파티야. 그 파티를 연 사람은 니콜라스 푸케라는 당시 재무부 장관인데.

 

<니콜라스 푸케>

 

이녀석이 자신의 성에다가 루이 14세의 왕위를 축복한다는 의미의 축제를

존나존나존나존나존나존나존나존나존나 성대하게 열어.

이새긴 딱봐도 마자렝이 뒤지고 비어있던 수상자리가 존나 탐났었나봐

 

<니콜라스 푸케의 성. 보 르 비콩트 성 Vaux le Vicomte>

 

성의 규모가 마을 3개를 해체하여 만든 규모인데, 이 파티에 사용된 모든 식기는 금으로

장식되어 있었고, 정원에는 1,200여개의 음악분수가 설치되었으며,

17세기 프랑스에서 가장 유명한 극작가인 몰리에드의 레파슈라는 연극이 정원에서

공연이 되었고, 밤에는 화려한 불꽃놀이를 하였다고 해.

 

루이 14세는 처음에 성에 도착했을때 성의 규모에 놀라고, 푸케의 부에 놀랐다고 해.

그리고 불꽃놀이의 하이라이트는 중앙 운하에서 고래모양 형상이 물 속에서 올라오면서

등에서 불을 뿜는 현상이었는데, 루이 14세는 그것을 말을 타고 보다가

말이 놀라 발광하는 바람에 루이 14세는 바닥으로 떨어졌고

그때 옆에 있던 시종이 '왕이시여, 두려우십니까?'라고 물어봤다고 해.

 

원래 루이 14세는 그 성에서 하룻밤 있다가 가기로 했지만 그 직후 돌아가게 된다.

이제 진짜로 왕이 되어서 뭐좀 본격적으로 해보려고 했는데 어디서 찌꺼기 같은 새끼가

갑자기 지가 왕인 마냥 깝쭉대니깐 개빡쳤던 루이 14세는 루브르궁으로 돌아가서

푸케가 부정하게 부를 축적한 것이 아닌지 조사를 실시하고

결국 푸케는 부정축재 죄목으로 체포되어 종신형이 처해지게 돼.

 

이후 루이 14세는 푸케의 보 르 비콩트 성보다 더 근사한 성을 만들겠다고 다짐하게 되고

그 성을 만들었던 건축가, 실내 장식가, 정원가를 다시 불러들어 자신만을 위한 성을 만들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베르사유 궁전이야. 아버지와의 추억이 남아있는 곳에다가 자신만의

가장 위대하고 화려한 궁전을 짓기 시작해.

 

 

베르사유 궁전은 솔직히 보 르 비콩트 성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보 르 비콩트 성의 특징은 무엇일까?

바로 건물의 정면인 파사드가 가장 화려한데,

성의 입구가 아닌 정원을 바라보는 쪽이 정면이라는 점이야.

이 성은 최초로 성을 만들 때 건물보다도 정원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어.

이후 건축과 정원의 조화를 통해서 성의 소유자의 취향을 보여주는 방식이 주를 이루게 돼.

 

이렇게해서 아주 중요한 개념이 하나 창출이 되는데,

그것이 바로 프랑스식 정원이라는 개념이야.

프랑스식 정원은 곧 기하학적인 정원을 뜻하는데,

정원을 하나의 예술작품화 하는 행위야.

인간이 마치 조각을 만들 듯이 자연을 깎고 다듬어서 완벽한 인공미가 실현되도록 하였어.

이런 정원을 만들려면 반드시 철저하게 설계를 해야 했고

철저하게 설계하여 엄밀한 통일성이 실현되도록 만들어야 했는데,

한 사람의 손에 의해서 모든 것이 통제되는 이 모습이 절대왕정 체제를 추구하는

루이 14세 자신의 취향과 매우 잘 맞아떨어졌는지 루이 14세는 정원을 노무 좋아했어!

 

 

 

 

'

 

이로써 정원은 예술과 건축의 일부가 되었어.

 

 

그리고 루이 14세의 마음을 끌어당긴 또 하나의 장치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분수야. 베르사유 외부의 핵심은 정원과 분수야.

베르사유에는 약 600여개의 분수를 가동시키기 위한

길이가 5.5km에 이르는 거대한 운하와 55개의 작은 연못이 있어.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분수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레토의 분수이고 하나는 아폴론의 분수야.

아폴론은 뭐 루이 14세 본인이 항상 태양왕이라고 했으니 당연한건데,

 

레토의 분수는 왜 있는가하면.

레토는 제우스와 사이에서 태양의 신 아폴론과 달의 신 아르테미스를 낳은 티탄 신족의 여신인데,

제우스 정실 마누라 헤라가 역시나  괴롭혔겠지.

헤라는 아이를 임신한 레토에게 해가 비치는 어느 장소에서도 아이를 낳을 수 없을 것이라고

저주를 퍼부었어. 레토는 해가 들지 않는 땅으로 내려갔고 어느 마을로 가서 아이를 낳으려고 했느데

그 마을 사람들이 헤라의 보복이 두려웠는지 이 졎밥새기들도 레토를 존나게 괴롭혔다고 해.

나중에 가서야 레토는 제우스의 부름을 받고 다시 하늘로 올라가고, 그의 자식들은 위대한 신이 되었어.

이때 레토는 본인이 겪었던 치욕을 갚기 위해 본인을 괴롭혔던 졎밥새기들을 개구리로 만들어 버려.

즉, 레토의 분수의 주된 주제는 '복수'야.

루이 14세가 복수를 주제로 한 분수를 왜 중요시 했을까?

루이 14세는 분명히 귀족들에게

'나는 프롱드의 난을 잊지 않고 있다. 내가 복수해서 좆되기 싫으면 잘해라'라는 말을 하고 있는 걸꺼야.

 

루이 14세가 분수를 좋아한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그 곳엔 자연을 역행하는 힘이 있기 때문이야.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이 순리인데, 분수는 자연의 힘을 역행하는

절대 권력자의 힘을 보여주는 설치물이지.

이러한 분수를 통해 자신의 힘을 마음껏 보여주고 싶었던것이 루이 14세의 마음이었어.

이렇듯 베르사유에 있는 모든 조형물은 아름다우면서도 정치적 의미를 담고 있어.

 

 

 

이제 건물 내부로 들어가 보자.

베르사유 궁전에서 가장 중요하고 유명한 방은 뭐니뭐니해도 바로

 

거울의 방이야. 거울의 방은 길이가 73m로 회랑 형태로 쭉 뻗어 있어. 높이는 13m야.

벽 쪽으로는 17개의 거울이 설치되어 있고, 정원이 있는 바깥 쪽으로도 17개의 똑같은 형태의

창문이 설치되어 있어.

창문을 통해서 햇빛이 들어오면 거울에 반사가 되고, 이 빛은 천장을 비추는데

천장에는 샤를르 르 브렝이라는 실내장식가가 그린 벽화가 장식되어 있어.

뿐만 아니라 이 천장에는 수 많은 샹들리에가 설치되어 있는데,

저녁 노을이 지는 무렵에 붉은 빛이 창문을 통해서 들어오면 거울에 반사되어 이 샹들리에를 비춘다고 해.

샹들리에 수 천개의 크리스탈이 이 빛을 파편화시켜서 이 공간을 가득 메우는 것을 보면

이는 마치 천국에 와 있는 느낌이 들어.

 

루이 14세는 자녀들의 결혼식 등 이곳에서 중요한 행사를 많이 했어.

또한 외교 사절단을 초대하여 연회도 하였는데, 프랑스 권력을 상징하는 곳이 바로 거울의 방이야.

프로이센이 프랑스를 공격하여 성공했을 때 그 승리를 기념하는 행사를 했던 곳도 바로 이 곳이고,

세계대전 이후 독일과 평화협정을 맺은 곳도 바로 이 곳이라고 해.

 

 

베르사유의 내부는 두 개의 공안으로 이루어져 있어.

실제 왕과 직계 가족이 잠을 자고 생활하는 공간인 내실과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공간인 의전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내실의 경우 베르사유의 모태가 되는 루이 14세가 어린 시절

아버지와 사냥을 하기 위해 떠났다가 잠시 쉬어가던 작은 성의 모습을

그대로 남겨두고 리모델링을 한거야.

벽돌로 되어 있는 이 곳을 남겨두고 바깥에다가만 대리석을 이용하여 장식했고,

다른 곳은 확대, 증축 한거야.

 

루이 14세는 실제로 베르사유 궁전에서 귀족들이 자신을 태양처럼 숭배하도록 교육을

시켰어. 그렇게 하기 위해 의전이라는 제도를 확립했는데.

분 단위로 일정표를 만들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의전에 맞춰서 사람들이 생활하도록

일정을 짜놓았어.

그 의전의 시작은 아침 8시이며

아버지가 지은 성에서 항상 잠들고 8시에 눈을 떠서 8시 반에 의전용 침실로 가서 다시 누운데.

화려한 의전을 하기 위해 꾸며진 이 침실에 루이 14세가 누워있으면

귀족들이 방으로 들어오고, 그때 루이 14세는 다시 눈을 뜨고 옆에 있는 시종이 큰 지팡이로 바닥을

3번 두드리면서 '지금부터 프랑스의 하루가 시작된다.'고 크게 외친다고 해.

그 뒤에 이 귀족들에게 순서대로 무릎을 꿇고 매일 충성서약을 받는 과정으로 진행이 돼.

 

이로써, 왕은 단순한 사람이 아닌 하나의 국가 기관이 되었고

왕이 밥을 먹고 잠을 자고 눈을 뜨는 것이 국가 행사가 되었어.

 

이렇게 강력했던 군주였던 루이 14세는, 그 누구보다 예술을 사랑했던 군주로 기록되어 있어.

때문에 이전에는 이탈리아의 아류였던 프랑스의 예술이 루이 14세의 후원에 힘입어 엄청난 비상을 하게 되고,

이후 프랑스 예술은 이탈리아와 동등하면서도 독자적인 모습을 이루게 돼.

 

 

 

3줄 요약

1.루이 14세는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던 프랑스의 절대군주

2.그의 권력을 예술로서 승화시킨 베르사유 궁전

3.예술을 사랑했던 절대군주 덕에 프랑스 예술이 엄청난 발전을 이룸

 

 

 

 

 

 

 

 

 

 

 

 

출처https://www.ilbe.com/view/102974045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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