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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팔가 해전을 설명하면서 넬슨 제독만큼 비중있게 다루었던 인물이 하나 있어

바로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인데,

나폴레옹의 전성기는 일베에서 이미 많이 다루어 졌고, 트라팔가 해전 글 보면 대충이나마 나와 있으니까, 그 후기, 나폴레옹의 몰락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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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 사람이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이야.

나폴레옹의 군대는 트라팔가 해전에서 거하게 패전한 이후, 영국의 해군은 이기기 힘들다는 생각을 해서였는지,

정치적인 방법을 써서 영국을 압박하려 노력해.

이 방법이 바로 "대륙 봉쇄령"(1806)인데, 경제적으로 영국을 고립시킴으로써 그들이 굴복하도록 만드는 속셈이였지.


저 선을 기준으로 대륙 봉쇄선이 그어졌고, 이를 어길 시 경제적 압박과 함께,

대대적인 군사적 압밥을 가한다고 엄포를 하게 되지.

하지만 나폴레옹은 뛰어난 장수였을 지언정, 절대 뛰어난 정치가는 아니였던게 분명해.

다혈질적인 성격으로 만들어진 이 결정은 사실상 나폴레옹 몰락의 시발점이라고 볼 수 있어.


왜냐고?

(화질 좋은 자료가 없는건 앙망한다;;ㅠ)

그때 당시 영국은 이미 세계 각국에 엄청난 식민지를 세우기 시작했어. 이 지도는 1815년 (나폴레옹 집권 당시)의 지도인데,

20세기에 들어서는 저거보다 훨씬 더 넓은 영역을 먹어버리지.

각설하고, 이미 세계적인 식민지를 가지고 있던 영국은, 이미 우리 일게이들 좆만한 유럽의 시장에 매달리지 않아도 되었지.

식민지에게 강매를 시켜서 돈을 벌고, 싼값으로 팔게해서 천문학적인 이익을 강탈하고 있었으니까. 물론 피해가 없었다고

보는건 거짓말이겠지만, 그래도 버틸 만한 수준은 된거야.



자, 그럼 이 대륙 봉쇄령은 어떤 결과를 일으키냐?


영국에게 농산물을 수출하고 ㅆㅅㅌㅊ 공업품을 수입해왔던 나머지 국가(프랑스 포함)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쳐. 이중에서도 특히 러시아가 그 영향이 컸는데, 농산물의 수출 대부분을 영국이랑 하던 러시아는

대륙 봉쇄령때문에 경제가 파탄의 경지에 이르게 돼.

따라서 러시아나 포루트갈, 스페인 등등의 나라는

영국과 밀무역을 계속 하게 되고, 결국 대륙 봉쇄령은 있으나 마나한 제도가 되지.

영국이 바다를 장악하고 있는 상태에서, 굉장히 비 합리적인 선택을 한거야.

대륙 봉쇄령에도 불구, 계속 영국과 밀거래를 하던 스페인을 발견한 프랑스는, 스페인의 왕을 폐위시키고 본인의 형, 조세프를 왕좌에 앉혀.

이 사건은 곧바로 스페인과 포루트갈 등의 민족폭동으로 이어지게 되지.

(Joseph Bonaparte)
이 사람이 조세프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의 형이지.

스페인과 포루트갈에서 시작된 분란은, 곧이어 네덜란드와 독일에서도 계속 돼.

이에 프랑스 국민들은 점점 더 실증을 느끼기도 하고, 정규전 아닌 정규전을 치르게 되는 프랑스의

군인이자 국민들은 차라리 옛날이 나았다고 생각하기 시작하지.

이런 악조건에서도 나폴레옹은 침략을 멈추지 않아.

1812년, 계속해서 대륙 봉쇄령을 어기고 영국과 밀교역을 해왔던 러시아에 침공하게 되거든.



무려 60만 대군을 이끌고 간 러시아 침공은 어려운 일은 아니였으나, 응디 따숩던 프랑스에서 지내던 프랑스 군들이

러시아의 혹독한 추위를 견디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였지. 또, 러시아는 프랑스 군이 오는 곳 족족 불을 질러버려서, 프랑스가 식량을 못 먹도록

조취했어. 그 와중에 러시아 국민들도 수도 없이 죽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지.

결국 60만 대군중 40만은 동사, 아사로 죽게 되고, 10만은 포로로,

나머지 군사들 모두 탈영을 하거나 실종 되었다고 해.

하지만 나폴레옹은 또 그 바퀴같은 생명력으로 프랑스로 돌아와서 1813년 새로운 군대를 일으켜.

그리고 이에 대비한 연합군 (영국,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러시아, 스웨덴 등)과 다시한번 충돌을 일으키지.

그게 바로 라이프치히 전투 (1813)의 시작이야.



10월 16일, 전쟁의 서막이 올라가. 프랑스는 19만명, 연합군은 30만명이나 되는 거군을 이끌고, 유럽의 존폐가 걸린 싸움을 하게 되지. 이때 동원된 대포만 해도 2500문이 넘는다고 해.

(사실 라이프치히 전투 하나로도 충분히 정보글이 나오는 엄청난 분량이라 ㅠ 나중에 자세히 설명하고 여기서는 과정만 알아보도록 하자)


하지만 프랑스는 수적으로 너무나도 불리했어. 우선 오스트리아는 당시 코네비츠(Connewitz)를 향해 진군하고 있었으나, 그 길목에 매복하고 있던 프랑스

군에 의해 ㅁㅈㅎ당하고 퇴각해.

오스트리아는 다시 방향을 바꿔서 돌리츠 라는 곳을 공격하는데, 이때 당시 프랑스의 동맹국이였던 폴란드군이 ㅁㅈㅎ당하지. 프-폴 연합이 다시 공격을 해서 성공하

는 듯 싶기도 했지만, 결국 오스트리아의 중포가 설치되고 엄청난 폭격이 가해져서 프-폴 연합은 퇴각하게돼. 퇴각하면서 모든 작물들을 태웠음은 물론이지.

이 외에도 바하우 모케른 전투 등이 있었는데, 너무 길어져서 생략하도록 할께.

결과적으로, 10월 18일, 프랑스는 정말 열세에 몰린것 치고는 ㅆㅅㅌㅊ로 잘 막아냈지만, 7군단 장병 장 레이니에(Jean Reynier)와 그의 병사 5400명이 배신하는 등,

사방에서 침공해오는 적들을 막아내지 못하고, 프랑스군의 거점이였던 라이프치히로 물러서기 시작하지.

결국 19일 새벽, 나폴레옹은 참패를 당하고 퇴각을 명령해.

이 전투에서만 민간인 포함 80만명이 죽어나갔고, 프랑스도 프랑스지만 연합군의 피해도 막심했지.

나폴레옹은 프랑스로 돌아오지만, 전투에서 패한 장군을 반겨줄 사람은 없었어.

결국



나폴레옹은 고배를 마시고 그해 5월, 황제의 자리에서 폐위당하고, 엘바 섬으로 귀양을 가게 되지..

엘바로 귀양가는 배에서 나폴레옹을 존경하던 갑판장은 "우리 모두는 폐하가 다음번에는 좀 더 운이 좋기를 바라 마지않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하는 일화도 있어.

하지만 끈기의 나폴레옹은 1815년, 다시 한번 엘바 섬을 탈출해서 7000명에 군사를 일으켜서 제국의 재기라는 명분으로

100일 천하를 이룩해. 다시 집권을 시작한거지. 그리고 나폴레옹은 제국의 공존을 주장하게 되나,

이미 나폴레옹에겐 가망이 없다고 판단한 연합군은 프랑스 제국이 공중분해 될 시 얻을 수 있는

이익을 노려서 프랑스로 진군하게 돼.

이게 바로 그 유명한 전투,

워털루 전투[ Battle of Waterloo ]지.

여기서 두 명장이 대결을 펼치는데 , 바로 나폴레옹과

웰링턴(Welington)

웰링턴 장군이야.

프로이센, 영국 등과 교전을 하던 나폴레옹은 마지막으로 영국의 웰링턴의 군대와 교전하게 돼.

프랑스 군 7만 2000, 웰링턴 군은 6만 8000정도의 규모였는데, 그 이유는 나폴레옹이 각개 격파를 하기 위해서 군사를 나누어 부하장수들에게

맡겨서 그렇지

여튼, 나폴레옹의 전술은 각개 격파였기 때문에, 제일 중요한건 시간의 싸움이였어 왜냐면 그 당시 나폴레옹은 영국과 싸우고 있었고, 프로이센의 잔병들을

격멸하기 위해 부하장수인 그루시에게 3만의 병사를 딸려서 보냈지.

하지만 이건 잘못 된 판단이였어. 웰링턴은 프로이센 말고도, 추가적인 병력이 더 있었거든.

따라서 웰링턴은 무조건 방어전술을 펼치면서 그 지원군들을 기다렸지.

나폴레옹은 엄청난 폭격을 했지만, 산등성이 넘어로 병력을 후퇴시키는 바람에 산이 하나의 방패가 되어 영국군들을 보호해줬지.

효과가 없자 나폴레옹은 기갑병들을 추가적으로 급파하지만, 이 역시 효과를 보지 못해.





이게 워털루 전투의 상상도인데, 저기 파란색 3번, 6번 화살표 있지? 저게 프로이센의 군대를 따라간 그루시의 군대야. 검은색 7, 파란색 6, 빨간색 3, 빨간색 5가 만나

는 곳이 워털루 전투지인데, 브루셀 (Brussels)에서 시작하는 빨간색 화살표 3이 웰링턴 장군이야. 그리고 빨간색 5가 지원 병력이고, 파란색 6은 검은색 7을 쫓다가 지

나폴레옹을 지원해주려 오지만, 그 시기가 이미 너무 늦어버리지. 심지어 프로이센 병사들도 잡지 못했어.

이 결과로 나폴레옹은 혼자서 도망가고, 나폴레옹은 세인트 헬레네 섬으로 유배를 가게 되서 그곳에서 조용히 생을 마감하게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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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일간베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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